‘흙 내음, 비에 젖은 나무냄새, 비누 냄새, 그리고 살 냄새’ 창문을 두드리는 빗소리가 들리면 설레는 기분이 들어.너는 비가 오는 날을 좋아하니?비가 오면 교복 끝이 축축해지고, 학교에 도착할 때 즈음이면 이미 양말 속까지 젖고는 해.그래서 도착하자 마자 양말을 벗어 던지고 슬리퍼 차림으로 복도를 걸어 다니곤 하지.그래도 비가 오는 소리로 아침을 맞이하면 설레곤 해.비가 오는 날의 학교가는 길은 새로움으로 가득 하거든. 우산을 쓰고 걷기 시작하면 비는 톡톡 소리를 내기도 하고 우수수 두드리기도 해.그런 빗소리가 잠을 깨우면 그 자리에 있었는 지도 몰랐던 것들을 마주하게 되지.언제나 조용히 숨어있던 흙 바닥, 그 속에 숨어 있던 풀과 나무의 뿌리들.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나무들.그러한 것들이 비가 오면 자신의 향기들을 뽐내려 해.그래서 나는 뽐냄을 즐기기 위해 공원길을 통해서 학교를 가지.비 오는 날의 남색 빛깔은 무대가 되어 우리가 그들에게 더 집중하게 만들어.남색 풍경 속 공원 길에 들어서면 물에 젖은 폭신폭신한 흙의 향을 마주하게 돼.거칠면서도, 촉촉하면서도, 부드럽게 다른 향들을 머금고 있지.그래서 그 안에 숨어있던 풀과 뿌리들도 조심히 고개를 들어, 알싸하면서도 촉촉한 존재감을 자랑하지.그리고 공원길의 큰 오빠 격인 나무들도 조심스레 자신들이 있다고 말을 걸어.그런 향연들을 즐기며 공원길을 지나면어느 새 남색 빛 풍경 속에 있던 나도갈색이기도, 초록색이기도 한 색으로 알록달록하게 푹 젖어 있는 거야.나의 교복 속에 숨어있는 풀과 흙과 나무의 향취들, 그리고 젖은 교복에서 나는 미세한 비 내음. 공원 길을 지나 발 끝이 축축하게 젖어갈 때 즈음이면 학교가 나와.어두운 풍경 속에서 빛나고 있는 학교.평소에는 어디 보다 어두워 보이던 학교는 홀로 비 속에서 하얗게 빛나고 있어.교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북적북적한 소리들이 우악스럽게 달려들어.누군가는 머리를 말리고, 누군가는 젖은 양말을 벗어 창문 밖에 널고 있는 거야.그럼 나는 그 사이를 지나 자리에 앉아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가 후하고 내쉬는 거야. ‘흙 내음, 비에 젖은 나무냄새, 비누 냄새, 그리고 살 냄새’